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카르두 콰레스마 (문단 편집) == 클럽 경력 == [[스포르팅 CP]] 유스에서 차근차근 실력을 키우면서 로컬보이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00-01 시즌 17살에 데뷔전을 치른 콰레스마는 이듬해부터 주전 윙어로 활약했다. 2002-03 시즌부터는 팀이 리그에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지만 호날두와 함께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유럽에 존재를 알렸다.[* 이 당시 자신과 같이 스포르팅 유스팀에서 활약하던 후배가 바로 [[크리스티아누 호날두]]가 있었고 은퇴를 앞둔 팀의 최고참이 바로 [[파울루 벤투]]이다.]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서 2003년도에는 스페인의 명문구단인 [[FC 바르셀로나]]로 이적, 당시 외계인 [[호나우지뉴]]와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주목을 받지만 완성되지 않는 개인기 위주의 플레이로 인해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[[호나우지뉴]]와 [[루이스 가르시아(축구인)|루이스 가르시아]]의 주전경쟁에 밀려 시즌 중반이후로는 출전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결국 한 시즌 만에 다시 포르투갈로 복귀한다. 포르투갈 복귀 후 [[FC 포르투]]로 이적, 입성하자마자 벤피카와의 프리메이라리가 결승골을 터트려 부활하며 단번에 팀에서 포텐을 터트리기 시작한다. 데뷔 시즌부터 에이스로 등극 후 2005-06 시즌에는 동료들을 활용하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그해 도움왕에 오르며 리그 올해의 선수에 선정된다. [[FC 포르투]]의 리그 우승과 코파 2연패에 일조한 콰레스마는 [[2006 독일 월드컵]]에 후보에 오르게 되지만 [[루이스 피구]], [[크리스티아누 호날두]], [[시망 사브로자]]의 벽앞에 결국에는 월드컵 출전이 좌절된다. 하지만 2006-07 시즌에도 꾸준한 활약에 힘입어 리그 2연패를 이끌었다. 이후 [[아틀레티코 마드리드]], [[리버풀 FC]], [[토트넘 홋스퍼 FC]] 등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포르투에 잔류 결정, 팬들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게 된다. 2007-08 시즌에도 포르투의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3연패를 했지만 유로 2008에서 다시 호날두와 시망의 그림자에 가려져 주전으로 활약할 수 없었다. 이에 실망한 콰레스마는 빅리그로의 진출을 선언했고 결국 [[주제 무리뉴]] 감독이 새롭게 시작하는 [[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|인터 밀란]]으로 이적하게 된다. 포르투 시절처럼 인상적인 활약을 기대했지만 적응에 실패를 하면서 주전에서 밀려나가게 되며 2008-09 시즌 전반기를 망치고 겨울 이적시장 때 스콜라리 감독이 있는 첼시로 임대를 떠나가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게 되었지만 헐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선발출전으로 데뷔전을 치루자마자 그를 데려온 스콜라리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고 [[거스 히딩크]]가 임시감독으로 오면서 이 역시 주전경쟁에서 밀리게 된다. 결국에는 인터 밀란으로 다시 복귀한 후에도 기회를 받아도 부진하는 등 적응에 실패하고 이후 2010-11 시즌이 되자 쉬페르리그 [[베식타스 JK]]로 이적하게 된다. 그나마 쉬페르리그에서는 상당한 활약을 보여 베식타스의 유로파리그 48강전에서도 맹활약했다. 이렇게 베식타스에서 공식 대회 73경기에 출전해 18골 27도움이란 맹활약을 했지만 2011년에 [[니하트 카흐베지]]와 함께 침을 뱉는 등 기행을 벌였고, 부상을 당해 2012년 2월까지 쉬었다. 2012년에는 감독 [[카를루스 카르발랼]]과 싸우며 구단에 무기한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. 그리고 2013년 1월 아랍에미리트 알 아흘리로 이적했다. 그러나 여기서도 부진하여 방출되었다. 그리고 2014년에는 FC 포르투로 이적하여 유로파리그에서 UCC 장면을 양산하며 대 활약을 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